원문: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2622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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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하게 생겼는데 속은 부드럽더라
한겨레
» 스포츠실용차와 세단의 장점만 모았다는 르노삼성의 QM5
[매거진 Esc] 전문가 3인의 자동차 해부교실
스포츠실용차와 세단의 장점만 모았다는 르노삼성의 QM5

르노삼성자동차가 내놓은 새 차로 자동차 시장이 떠들썩하다. 그 주인공은 새로운 운전 경험을 찾는 운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의미의 ‘퀘스트 모터링’(Quest Motoring)의 앞 두 글자와 르노삼성의 중형차를 상징하는 숫자 ‘5’를 조합한 큐엠5(QM5)다. 스포츠실용차(SUV)와 세단의 장점만 모았다는 ‘크로스오버’ 자동차를 내세운 이 자동차를 전문가 3명과 함께 꼼꼼히 따져봤다.

» 생각보다 조금 비싸네

김우성 〈BBC 톱기어〉 편집장
생각보다 조금 비싸네

티브이 광고에 세단과 에스유브이(스포츠실용차)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연달아 내보내더니, 르노삼성은 세단도 에스유브이도 아닌 크로스오버를 끄집어냈다. 첫 에스유브이를 내놓고도 굳이 크로스오버로 불러달라는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르노삼성의 크로스오버에는 분명 이유가 있단다. 세단과 에스유브이의 성격을 두루 담아낸, 현저히 다른 두 차종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차라서 그렇다는 주장이다.

아닌 게 아니라, QM5의 앞모습은 세단인 SM3와 무척 닮아 있다. 다른 에스유브이에 비해 지붕도 꽤 날렵하게 빠졌고, 차체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에스유브이라기보다 덩치를 키운 해치백 같은 느낌을 준다. 실내는 과잉 기미가 엿보일 정도로 곡선이 풍부하다. 다른 에스유브이와 뚜렷하게 차별은 되나 정돈된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운전석의 위치에서부터 다양한 장비들에 이르기까지, 실용성에 관한 한 탁월한 재주를 과시한다. 대부분의 장비들은 기존 국산차에서 보던 것들과 수준을 달리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것을 실내에 몰아 넣은 탓에 전체적으로 비좁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실제 뒷좌석에 앉아 보면 그리 답답하지 않은데, 앉기 전까지는 좁아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성능은 훌륭하다. 150마력을 내는 2.0리터 디젤 엔진은 6단 자동기어와 기막힌 궁합을 자랑한다. 가속력도 후련하고 제동력도 믿음직하다. 차체가 항상 균형을 잃지 않아 운전할 때 안정감도 좋다. 하체에서 좋은 승차감을 뽑아낸 실력이 대단하다. 뜯어보면 QM5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풍성한데도 에스유브이라는 전제를 깔고 바라보면 그 매력이 확 와 닿지 않는다. 생각보다 비싼 차 값은, 5인승 에스유브이에 대한 심리적 기준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을 망설이게 한다. 기본형은 2천만원대에서 시작하지만, 옵션을 선택하다 보면 값은 눈 깜짝할 새 부풀어오른다. 매장에서 이 차를 찾는 소비자들은 십중팔구 에스유브이를 사려는 사람들일 텐데, ‘에스유브이’를 강조하자니 소비자들의 마음을 휘어잡기가 만만치 않다. 이 에스유브이가 크로스오버여야만 하는 이유다. 문제는, 크로스오버라는 개념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쉽사리 각인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크로스오버’ QM5의 고민 또한 여기에 있지 싶다.

» 싼타페와 한판 붙는가

이경섭 <모터 트렌드> 편집장
싼타페와 한판 붙는가

현대차가 ‘대중적’이라는 말과 즐겨 조합된다면 르노삼성차는 ‘스페셜’이란 단어와 어울리길 좋아한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는 소수의 모델만으로 대량 생산라인을 갖춘 경쟁자와 시장 점유율 싸움을 벌여야 하는 르노삼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르노삼성은 주기적으로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에디시옹 스페시알’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려 애썼다. QM5 역시 마찬가지다. 유혈이 낭자한 에스유브이 시장에서 QM5가 내세우고 있는 콘셉트는 ‘세단과 에스유브이의 장점만을 담은 크로스오버’라는 것.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이지만 과녁은 명확히 잘 설정한 듯하다. 승용차의 장점과 에스유브이의 매력 중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QM5의 성격은 대단히 ‘승용차스럽다’. 렉서스 RX300이 오프로드 기능 대신 도심 여성 운전자를 겨냥한 승차감 위주의 모델을 내놓아 히트했던 것처럼 QM5 역시 도심 통근자 또는 젊은 여성 운전자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에 타고 내리기 부담이 없고, 다이내믹한 스타일에 운전도 편하고 옵션이 화려하다. 다부진 체격에 걸맞게 주행성능도 매끈하다. 150마력의 힘은 충분하고 승용차처럼 부드러운 승차감에 시야는 높고 넓다. 외관 못지않게 실내도 개성이 넘치는데 특히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는 개방감이 좋다. 스피커 10개가 선사하는 보스 오디오 시스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 정숙성도 좋아서 까칠한 디젤음이 오디오 사운드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쯤이면 도대체 흠을 잡기 힘들다. 아무렴, 장점만을 모은 ‘크로스오버’인데.

모든 장르가 서로 어지럽게 뒤얽히는 컨버전스 시대에 크로스오버의 등장은 특별하다기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QM5의 가장 특별한 점은 체급을 올려 거구의 상대와 맞붙으려는 가상한 야심이다. 라이트급 계체량으로 미들급 챔피언인 싼타페와 상대하기 위해 링 위에 나섰으니 말이다. 요모조모 뜯어보면 기량은 출중해 보인다. 기왕이면 먹을 것 없는 소형 에스유브이 시장보다는 수익이 큰 중형 에스유브이 시장을 넘본다는 전략도 옳았다. 이제 남은 것은 판매율 그래프를 지켜보는 일. 번번이 현대라는 거인의 뺨을 후려쳐온 르노삼성의 역할이 이번에도 빛을 발할지 꽤 흥미진진한 싸움이 될 것 같다.

» 맹렬한 디젤사운드는 없다

장진택 〈GQ〉 수석기자
맹렬한 디젤사운드는 없다

이 차는 특이하다. 프랑스 르노와 한국의 르노삼성이 함께 기획하고 일본 닛산의 기술로 설계하고 개발했으며, 다시 한국의 르노삼성이 생산해서 르노의 로고를 달고 세계를 달리게 된다. 단, 생산지인 대한민국에는 둥근 르노삼성 로고가 붙여진다. 이런 복잡한 배경을 바탕으로 시승기의 타이틀을 정하려 했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혼혈아’라는 단어는 너무 단편적이고, ‘해외파’라 하기엔 국제적인 탄생 배경이 설명되지 않는다. ‘국적불명’이나 ‘잡종’이라는 저급 단어를 쓰면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소송을 준비할지 모른다. 아무튼 QM5는 탄생부터 비범하다.

QM5는 티브이 광고를 통해 세단과 에스유브이 사이에 불편하게 걸쳐 있던 갈등이 모두 사라졌다고 선언하지만, 외모는 일견 에스유브이스럽다. 엉덩이가 여타의 에스유브이보다 완곡하게 잘리긴 했지만 이걸로 세단임을 웅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엉덩이는 조개처럼 아래 위로 열려서 여기 걸터앉아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거나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쌀가마를 싣기에 두루 유용하다. 감성으로 그린 세단엔 없는 에스유브이적 실용성이다. 하지만 실내는 손이 고운 여자 디자이너가 그린 촉촉한 세단 그대로다. 모든 도형이 둥글게 둥글게 그려져 에스유브이의 완고한 냄새는 코를 벌려 킁킁거려도 감지되지 않는다. 천장 가득 하늘을 담은 파노라마 루프와 여기저기 빈 공간을 채운 수납공간은 12월26일에 발견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경유를 먹고 달리는 디젤엔진이기는 하나 튀김기 속에서 끓어오르는 맹렬한 디젤 사운드는 아니다. 튀김기 위에 육중한 뚜껑을 덮은 것처럼 디젤식 웅얼거림이 억제되어 있다. 시프트 레버를 내리고 일단 밟았다. 곱상한 세단에서 볼 수 없었던 무서운 가속, 그 뒤에 이어지는 쫀득한 핸들링 역시 키 큰 에스유브이와 출렁이는 세단에 없던 메뉴로서, 굳이 말하자면 유럽풍 디젤 스포츠 왜건을 닮았다 하겠다. 이런 느낌이 한국에서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달리는 것만 보면 세단과 에스유브이 사이에서 고민할 이유는 없을 거다.

» 르노삼성의 QM5〈주요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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